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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한, 미술에 관하여
| 안성은(큐레이터)
미술에 관하여 생각할 때면 마음이 분주하다. 그것의 말할 수 없이 좋음에 관하여 생각하다가 이내 이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떠올리고, 이따금 찾아 드는 공허를 더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게 하는 미술적 순간 앞에 요동치곤 한다. 한동안 겹(layer)이 많은 작업을 좋아했다. 그것을 들춰보고 찾아 읽는 즐거움이 좋아서. 사유의 틈에 놓여 그 상태에 잠겨있는 것은 그 어떤 때보다 감미로웠다. 미적 쾌(快)를 극대화한 작업 앞에 말을 잃는 순간도 더러 있다. 자주 있지 않은 경험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좋은 것은, 말없이 동요하게 하고 작업 앞에서 다른 시공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을 볼 때이다. 그런 작업은 단서가 많지 않고 부러 읽으려 하지 않아도 (여러 의미에서) 쉽게 읽힌다. 좋은 작업은 작업에 자신을 비춰보게 하고, 시대를 반영하고, 그 자체로 또렷하게 말을 한다. 참으로 귀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셈이다. 미술은 참 많은 것을 한다.
애나한의 작업은 미술의 즐거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그의 작업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하는 몇 가지 특징 중,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시각적 충동’이다. 충돌로 바꿔 써도 무방할 정도로 강렬하다. 전시 공간 전체가 빛과 색으로 나뉘고 채워졌다. 어디까지가 빛이고 어디부터가 면인지 구분하려 들었다가, 이내 빛과 색의 중첩에 눈을 맡긴다. 빛이 색에 맺히며 원래의 색을 투명하게 변주하는 작업 앞에서, 공간 전체가 어떤 시공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저 앞을 걸었다. 지난 개인전 《Mr. Conjunction is Waiting》(예술의 시간, 서울, 2023)에서의 일이다. 색은 색을 비추고 빛은 색을 덧입힌다. 캔버스 뒷면 벽은 작업의 무대가 된다. 작업이 안팎의 공간을 아우르고 있어서, 작품에 ‘들어섰다’라는 표현도 퍽 어울린다. 미술의 여러 표현 방법이 있지만, 눈을 사로잡는 작업만큼 솔직한 것이 있나. 경쾌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작업을 두고 경험했던 전시마다 체감은 달랐으나 톤이 다른 연극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였으리라.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드라마틱”한 장면 구성을 두고 그린 숱한 스케치와 그리기를 위한 몸의 수행이 낳은 결과이다.
작가는 작업을 두고 실험하고 도전한다. 표현 방식과 매체를 탐구하고 몸에 익힌다. 나는 사람마다 안고 있는 원형이 있어, 그것이 아무리 변주되더라도 같은 심지를 가진다고 믿는 편인데 그래서 작가의 초기작들을 보면 작업이 훨씬 더 이해가 간다. (물론 사람은 개별이 가진 이해의 범위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그리고 작가마다의 차이도 크므로 이런 견해도 편파적일 수 있다) 그간 경험한 작업을 관통해 보자면 애나한은 추상을 다룬다. 빛과 색, 공간은 그의 오래된 주제이다. 특정 공간에 색이나 빛을 가두지 않고, 벽과 천장의 구분을 넘나들며, 투과되는 천과 면의 중첩과 반사체의 사용에 과감하다. 방금 기술한 대로면 추상은 이미지의 영역인 듯 뵈지만, 애나한의 작업에선 ‘서사’에 가깝다. 애나한은 그가 읽은 책에서 장면을 떠올리거나, 직접 단어를 골랐고, 일견 언어의 풍경을 공간으로 옮겼다. 공간에 서사성을 부여한 것이다. 심상(心象)을 반영하는 이미지와 서사의 공간을 그리는 것. 조형적 추상이 서사를 만나면 이미지에 특정 대상을 지시적으로 부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별이 가지는 추상성을 강화한다. 서사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 닿아있으므로 일관성을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각기 다른 추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형과 서사, 그리고 텍스트에 관한 그의 고민은 오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의 유의미한 시도는 20년이 넘게 운영되며 107회의 전시가 이루어진 ‘사루비아’라는 공간을 유기적인 한 인물로 상정하며 그 특징을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오늘 처음 온 곳인데, 어제의 냄새가 난다.
공기는 침묵했지만, 기억이 그의 침묵을 깼다.
내가 떠난 자리에서 누군가 아직 숨 쉬고 있다.
틈새의 빛은 침묵했고, 어느새 나는 그 빛의 틈에 있었다.
빛이 나를 붙잡았지만, 그림자가 저편에서 웃는다.
떠난 뒤에도 그 시선은 이 어둠 속에 머문다.
어둠을 찾는다, 어둠은 나를 찾는다.
눈을 감자, 네가 더 선명해졌다.
나는 살아 있으나 숨 쉬는 건 내 안의 너였다.
마주 본 순간, 난 너였고 넌 나였다.
2025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SO.S / 애나한 《Find Me Not》 작품 리스트
나는 이것이 관객 각각(의 마음)에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하늘하늘한 천 너머의 그림을 보거나, 전시 공간의 평면도를 도식화한 이미지가 돌림노래처럼 이곳과 저곳에 남은 공간을 실제로 걷고, 맥박 소리를 들으며 희미한 빛을 따라 눈을 옮기거나, 반들반들 윤이 나게 색칠해 내가 어스름하게 비치는 작품 앞에서 나이며 내가 아닌 것을 본다. 작가는 그가 마주한 공간에 관한 문장을 작품으로 길어 올렸고, 관객(나)은 그곳에서 ‘이미지 – 시’를 만나며 전시 전체를 ‘공간-시’로 접한다. 이것을 ‘형상시’라고 일컬어도 좋지 않을까. 사루비아 SO.S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애나한의 개인전 《Find Me Not》(2025)은 기존의 작업과 시각적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그의 안에 있는 이미지가 공간을 만날 때, 언어 역시 중요한 매체/매개로 다루어져 왔음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여겨진다.
그가 보인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 어떤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애나한의 문장과 그것과 조응하는 이 작업의 이미지를 보고 다른 이미지(언어의 풍경, 시각적 단상 등)를 계속 상상해 나가며 작가가 (제목과 설치된 작업-이미지로) 지시했던 것 이상과 너머의 것들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내가 작품의 제목인 문장들을 읽고 작가가 쓴 한 편의 시와 그것에 감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면에서 애나한의 작업은 상상과 내가 겪은 현재를 끊임없이 포개어 보게 만드는 ‘중첩의 공간’과도 같다.
언어는 대상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그것이 부재하더라도 언제고 대상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은 실제 대상이나 경험 자체가 아닌 그것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말로 표현되는 순간, 실재하는 경험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미지를 만나면 어떨까. 여전히 이곳에 있지만, 동시에 사라져 버린(버릴) 어느 순간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 나는 이것이 미술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기쁨과 슬픔과 닿아있다고 여겼다. 조형성을 ‘읽는’ 행위는 동시에 그와 동행할 언어를 찾는 일과 닿아있다. 작가는 다음이 두렵다고 했으나, 앞으로도 이미지의 문을 열어줄 구체적인 언어를 고르는 그의 손에는 주저함이 없으리라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그것이 가져올 기쁨에 관해, 또다시 덧대어 상상할 수 있는 문장들을 기대해 보며.
*개인전 Find Me Not,2025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 SO.S 비평가 프로그램
Anna Han, On Art
Ahn Seong-Eun, Curator